폴댄스#5. 내가 폴댄스 강사를 그만둔 이유: 폴댄스 강사의 꿈을 꾸는 당신에게
폴댄스는 매니아층이 은근히 두터운 운동이다.
몇몇 특정 학원들의 공격적인 폴댄스 전문인반 마케팅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그 어느 운동보다 취미반이 아닌 전문인반을 수강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
필라테스나 요가를 취미로 몇 년 한다고, 지도자반을 수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면,
폴댄스는 1~2년, 심지어는 몇 개월만에 전문인반을 수강하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전문인반 다음은 어디로 가지?"
고급반을 수강하거나 대회 준비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고, 자연스럽게(?) 강사를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학원에서 적극적으로 강사를 권유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주변에서 강사활동을 해볼지 고민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나는 과거 강사활동을 하다 그만둔 이력이 있다. 오늘은 내가 폴댄스 강사를 그만두게 된 사연(?)과,
폴댄스 강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과 견해이니, 그냥 가볍게 참고만 하는 것이 좋겠다. 진리의사바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폴댄스 강사는 "노동"으로서의 가성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직업이다.
1. 낮은 임금수준과 열정페이
물론 단순히 시급으로 따지면 결코 낮은 페이는 아니다.
하지만 시급 만원인 카페알바와, 시급 n만원인 폴댄스 강사를 시급만으로 1:1로 비교해서는 안된다.
카페알바는 하루 8시간*주5일 과 같은 식으로 근무가 가능하지만, 폴댄스 강사는 오로지 수업 시간*시급으로만 페이를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 폴댄스 학원들의 시간표를 생각해보면, 수업이 3개 이상 연달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전, 저녁반과 같이 수업이 띄엄띄엄 있을 수는 있어도, 오전 11시 - 저녁 8시 이런 식으로 수업을 연속으로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물론 개인레슨이 아주 많이 잡히다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폴댄스는 개인레슨 수요가 필라테스와 같은 운동만큼 있지는 않다.)
결국, 오전 11시부터 1타임, 저녁 7시부터 2타임 이런식으로 수업을 하게 된다면 하루종일 학원에 있지만 페이는 3시간 만큼만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뿐만아니라, 수업 준비하는 시간도 생각해야 한다. 폴댄스는 '기술' 이 있고 '진도'가 있는 운동인 만큼, 수업을 위해 콤보를 짜거나 기술을 연구하는 수업 준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고급반으로 올라갈수록. 초보 강사라면, 수업 준비에 할애해야 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하지만 학원에서 수업 준비시간까지 고려해 페이를 주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며, 심지어 수업 준비를 위해 학원 시설을 이용할 시간마저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폴댄스 강사 시급이 높지 않은 이유는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1) 폴 갯수만큼만 받을 수 있는 시간당 수강생
- 요가나 댄스 수업을 생각해보면, 바닥에 설 자리가 어느정도 있다면 딱히 수강생 수가 크게 제한되지 않는다. 폴댄스는 다르다. 특히나 요즘은 1인 1폴이 추세여서, 회원이 아무리 많더라도 폴 갯수만큼만 수강생을 받을 수 있다. 폴 간격도 어느정도 보장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단순히 면적으로만 보면 요가 수업으로는 20명이 들을수도 있는 공간에 폴은 5개 정도밖에 설치하지 못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폴댄스 수강료를 요가의 4배 수준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결국 강사 페이를 짜게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열정페이
- 폴댄스는 매니아층이 확실히 있는 운동이고, 폴댄스에 깊이 빠져서 시급 단돈 만원을 받더라도 폴댄스 강사를 꼭 하고싶어하는 사람들은 늘 있다. 시장이 좁다보니 PT나 필라테스, 요가처럼 직업시장이 어느정도 형성된 것도 아니다. 강사 채용은 보통 알음알음 이루어지거나, 공고가 나더라도 개별 학원의 인스타 포스팅으로 올라오는 정도다. 업계가 워낙 좁다보니 자리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학원 입장에서는 강사가 잘 구해지지 않는 게 아니라면, 페이를 많이 줄 유인이 딱히 없다.
2. 몸을 혹사시켜야만 하는 근무환경과 짧은 직업수명
허리가 반으로 접히거나 핸드스탠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요가선생님을 눈으로 직접 본 적 있는가?
요가나 필라테스, PT와 같은 운동들은 주로 강사의 지도 하에 일정 동작을 반복하며 수업이 이루어진다.
물론 강사가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시범 없이 설명으로만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도 많고 시범을 직접 눈으로 볼 필요가 딱히 없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아주 전문적인 클래스가 아닌 이상, 고도의 유연성이나 근력을 요구하는 동작을 수업시간에 진도로 나가는 경우도 잘 없다.
하지만 폴댄스 수업은 다르다. 수업중에 강사의 시연은 필수적이며, 취미반이더라도 레벨이 높을수록 고도의 근력과 유연성을 요한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어가는 회원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 늘 더 어려운 기술을 연습하고 연구해야 하는 건 덤이다. '폴댄스 강사'면 그정도는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사람의 몸은 퇴화한다. 몸은 딱딱하게 굳고 근육은 빠지고,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더라도 현상유지가 되면 다행인 시기가 찾아온다.
다리를 180도 보다 더 찢는 오버스플릿이, 허리를 꺾고 어깨를 열어 내 발목을 머리 위로 잡는 동작이,
한쪽 팔에 모든 체중을 지탱하는 동작이 과연 내 몸에 이로울까?
물론 꾸준한 트레이닝과 노력으로 이런 동작들을 완성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고, 박수받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트레이닝으로 별다른 부상 없이 위의 동작들을 수행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디에나 예외는 있듯이, 선천적으로 유연한 몸을 타고나거나 근력이 좋아 위의 동작들이 아무런 무리 없이 쉽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성인이 되고 나서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한, 한국의 평범한 2-30대 여자들의 입장이라고 생각해보면 위의 동작들은 결코 정상 범주의 동작이 아니다. 그러나 폴댄스 강사라면 적어도, 오버스플릿 정도는, 이글 정도는, 자네이로나 아이샤 정도는 가뿐하게 해야한다는 것이 이 업계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컨센서스가 되었다. 그래서 스플릿이 일자로 안 나오거나, 아이샤를 못하는 강사는 '실력이 없다'고 뒷담화를 당하게 되는 일도 종종 보았다.
그러다보니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평범한, 1-2년정도 취미로 폴댄스를 하다가 전문인반을 갓 졸업하고 폴댄스 강사가 된 사람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고급 기술들을 연습하고 유연성을 늘리려고 하게 된다. 그러다 회전근개 파열, 햄스트링 파열, 쇄골/갈비뼈 골절, 무릎인대파열, 발가락 골절 등등 ... 다양한 부상을 한번쯤은 겪게 된다. 수업을 못하게 되면 당연히 페이도 없고, 심지어는 강사에서 잘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주 3회정도의 적당한 운동은 당연히 건강에 좋을 것이다. 하지만 주 4- 5일, 매일 4-5시간동안 고난이도의 폴댄스 동작들을 시연해야 한다면 몸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생리중이거나 컨디션이 안좋다는 이유로 갑자기 수업을 펑크낼 수도 없으니, 컨디션이 절반밖에 되지 않더라도 수업은 꼭 해야만 한다. 이렇게 적으니 너무 최악의 직업인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당연히 좋은 점도 많고 적성에 잘 맞는 사람들도 많으며,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므로 가볍게 그렇구나 하고 참고만 하자.
3. 부정적인 사회 인식
이건 사실 부수적인 거라 긴말은 안하겠다.
나이든 어른들이나 일부(라기엔 꽤 많은) 젊은 사람들은 직업이 '폴댄스 강사'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영화나 뮤직비디오 같은데선 스트립쇼 이미지가 많이 소비되다보니 어쩔 수 없는거라 생각한다. 다만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이거나, 연애나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인지는 하고 있는게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경우에 해당한다면 폴댄스 강사라는 직업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1. 안정적인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파트 강사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 경우
2. 체력이 좋고, 성격이 활달하며 사람을 좋아하고, 큰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으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데에 큰 뜻이 없는 경우
3. 어느정도 폴댄스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1-2년 내 학원 개업 예정인 경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포스팅은 오로지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작성하였고, 폴댄스 업계를 비방하거나 폴댄스 강사라는 직업을 비하하고자 쓴 글이 아님을 밝힌다.